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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칼럼]그리고, 봄은 온다 상세보기

작성자: 사무국 조회: 2110

청소년 칼럼

 

그리고, 봄은 온다 

 

김유진(19세)

 

열하나. 내 청소년기는 인문학과 함께 시작했다. 인문학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저 삶을 배우는 곳이라 생각했다. 타인을 대하는 법부터 나를 성장시키는 것,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 때론 나 스스로에게 철저해지는 것, 책임을 다하는 것, 타인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 삶에서의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까지. 잘 실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내 삶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과 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왔다. 내가 실천하지 못하면 스스로 반성하고 되묻고 다시 행동하게 했던 것,나를 항상 깨어있게,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인문학이었다.

열아홉. 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순간과 현실과의 괴리감. 그것이 나를 다시 주춤하게 만들었다. 내가 인문학 공부를 한다는 것을 주위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알게 되었을 때, 대부분은 “인문학이 뭔데? 인문학을 왜 공부해?”라고 묻는다. 나에게 인문학이란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열망하게 만드는 공부라고, 적어도 이 사회가 지닌 잘못된 가치관들과 옳지 않은 체제로부터 흔들리지 않게 하는, 스스로 더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 타협하지 않게 하는 공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나에게 괴리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되니?”

사람들의 이런 질문은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내 삶을 깨어있게 하는 공부를 대학입시보다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이런 질문들은 ‘정말 내 삶에서 입시공부가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든다.

매주 일요일, 나는 아름다운 삶을 꿈꾸기 위해 인디고 서원으로 간다. 책을 읽고 함께 소통하고 스스로의 삶을 깨우는 시간이다. 하지만 월요일,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나는 내가 타협해야 할 현실을 만난다. 치열한 경쟁구도, 혹독한 입시체제, 삭막한 사회의 모습을 열렬히 비판했던 나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 체제에 순응하며 공부하는 학생일 뿐이다.

나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좋은 삶에 대해 또는 좋은 사회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을 꿈꾼다. 가족과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어느 대학을 가고 얼마만큼의 점수를 받느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세상을 꿈꾸고 그 세상을 이루기 위해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함께 연대하는 삶을 살고 싶다. 열아홉, 십대의 마지막을 지나고 있는 나는 스스로 사유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공감하고 연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지금까지 나를 가장 설레게 하고, 뜨겁게 꿈꾸게 하고, 결국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은 인문학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가능한 것이고 필요한 것인데, 왜 이런 것들을 꿈꾸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별난 사람이 되거나 지나치게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본질적인 가치를 보지 못하고, 일시적이고 수동적인 삶에 너무나 무감한 우리 사회다.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에서는 이 무감함을 ‘눈이 멀었다’라고 말한다. ‘백색실명’이라는 전염병으로 눈이 멀게 된 사람들은 엄청난 혼돈 속에 남겨진다. 갑작스런 눈멂에 사람들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암흑보다 어두운 하얀 빛 속에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도, 사랑도 모두 포기해버린다. 눈먼 자들에게 타인이란, 공동체란 단지 깊은 절망 속에서 만난 장애물일 뿐이다. 우리 삶의 가장 본질적인 인간적 가치에 눈먼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눈먼 것은 공동체적이고 인간적인 가치의 상실뿐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표현할 자유를 상실했고, 권리를 찾지 못한 채 책임까지도 포기했다. 자신의 삶과 전혀 관련 없는 사소한 연예기사나, 병역비리문제 등에는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쉽게 분노하고, 소리치면서도 정작 내 삶을 결정하고 우리 사회를 결정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쉽게 포기하고, 침묵하는 우리의 모습은 분명 충격적이다.

협력하고 연대하는 것보다 경쟁하고 이기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인간적인 삶을 열망하지 못한다.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라는 광고가 붙여진 버스가 사람들의 일상 속을 휘젓는 우리 사회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상실한 이 삭막하고 미친 사회에 무감해진 우리들은 이미 암흑 속에 갇힌 눈먼 자들이다.

나는 아직 용기가 없다. 그래서 용기 있게 친구들에게 ‘우리 함께 인문학 공부를 하자’고 말 건네 본적도 없다. 우리 더 좋은 가치를 그리고 삶을 함께 공부해보자고, 더 주체적이고 치열하게 삶을 고민해보자고 말하기 두려웠다. 내 삶에서 더 본질적이고,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안다고 말하면서도 친구들에게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한 나는 겁쟁이다. 나 역시도 이 시대의 눈먼 자이다.

하지만 내 삶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 봄이 오게 하기 위한 혁명이 그리 무모하고 막연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타인을 경쟁자이자 장애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우리 사회를 더 풍성하고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공감하고, 연대하고, 함께 걸어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내 삶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개개인이 서로를 존중하며 민주적인 공동체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때, 우리가 함께 꿈꿨던 공동선을 향한 세상은 가능할 것이다. 사회 공동체 안의 절대다수가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이타적이고 민주적인 삶에 눈을 뜬다면 혁명은 가능하다.

한 사람이 피워낸 꽃 한 송이로 봄은 오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사회에서 힘들다, 힘들다 말만 하면서 다른 누군가 세상을 바꿔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한 사람이 겨우 피워낸 꽃 한 송이가 꺾이면 그것은 우리에게 정말 절망일 뿐이다. 반면, 꽃이 정원 한가득히 핀 세상에서는 꽃 한 송이가 꺾이고 흔들린다 해도 봄은 반드시 온다.

레베카 솔닛은 말한다. “꽃을 꺾을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때로 꽃이 꺾이고 흔들린다 해도 그것은 곧 봄을 맞이할 수 있는 희망일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꽃을 피워낼 씨앗을 함께 싹 틔울 차례이다. 이번 <인디고잉>을 통해 함께 봄을 맞이하기 위한 혁명의 씨앗을 뿌렸으면 좋겠다.

 

출처 :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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