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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칼럼]두려움이라는 파도에 맞서는 방법 상세보기
두려움이라는 파도에 맞서는 방법
고민경(19세)
“D-며칠 내로 진입했다!”, “수능이 코앞이다”, “마지막 내신까지 잘 챙기자”
요즘 담임선생님을 시작으로 부모님, 친구들, 교과목 선생님들까지. 성적 이야기는 고3인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이고,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난 직후에는 걱정을 해야만 한다.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나이기에, 격려보단 우려와 걱정으로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다 대고 예전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웃어넘겼겠지만, 이제 그런 여유는 더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게 느끼라고 어느 누가 강제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고3이라면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것에 무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나였는데, 그런 부담감을 핑계 삼아 공부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한심한 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모순마저 일어났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고, 책을 읽으며 정신적인 성장을 해나가고 있다고 믿었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더 넓고 깊은 눈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몸에 익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체적이고 굳건한 개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는데, 인제 와서 보니 힘든 상황에서 피하려고만 하는 한없이 나약한 개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 자신에게 실망하며 한없는 허탈함과 무기력함에 잠시 빠져있게 되었고,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시던 부모님마저도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인문학 활동을 그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제안을 넌지시 하셨다. 아뿔싸, 덥석 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다행히도 일주일 만에 그 선택을 취소하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선택이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다시 선택을 취소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늘 옳다고 믿어왔고 공부하고 싶었던 인문학을 포기하려고 했던 것은 실질적으로 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 고3이 되어 초조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무언의 압박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두려웠다. 성적이 남들에 비해 하향곡선을 그리는 이유가 늘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책 읽는 시간 때문일 것이라 변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다시 내가 그 선택을 물릴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나 겪는 진통 앞에서, 아프다는 이유로 삶의 일부 요소를 도려내듯 중단해버리는 건 무책임한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변화를 일구어내겠다는 열정으로 목소리를 높여 주장하고 고민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회의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변하지 않는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는 고통스럽다. 그 현실 속 좋은 개인이 되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움 끝에, 나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에 아파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쩌면 두려움을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세상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아프다고 징징대는 건 죄가 아닐까?’와 같은 죄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안다. 오히려 정당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순한 죄책감은 위험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자격이 없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합리화해서, 자신을 윤리적 삶을 지향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끔 만드는 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진짜 윤리는 그것이 아니다. 큰 고통과 작은 고통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떤 일 앞에서 뼈저리게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절대적인 내 고통의 양은 정말 생존을 위협받는 누군가에 비해 작은 것이 될 수는 있어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는 없다.
『노인과 바다』와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에 나오는 두 노인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두려움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것에 어떻게 맞섰는지, 그 방법과 태도의 차이가 결국 어떤 삶을 사느냐의 차이다. 내가 선택해야만 하는 삶은 내가 맞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두렵지 않던, 바다의 파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당당한 인간,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 성공이라 불리는 것들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실패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겠다. 나 자신의 존엄함을 그 자체로 지켜낼 수 있는 대범함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고민, 이것이 진정 인간이 해결해야할 고민인지 먼저 제대로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질적 해결을 위해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훈련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또 엄청난 노력을 한 다음에는 용기 있게 나아가는 행동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 백지연,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마라』 중에서
이제 나의 선택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서, 학생답게 공부하겠다’가 아니다. 참된 인간이기 위하여 공부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행동하겠다. 고3을 가장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은, 동시에 수험생의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빛날 방법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아직도 두렵다. 그렇지만 맞서야 할 파도 역시 눈앞에 뚜렷이 보인다. 하늘 끝까지 닿을 것만 같은 파도의 색깔이 선명하다. 누군가가 사치라고 말해도 좋고, 이상만을 쫓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욕망한다.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겠노라고. 되고 말겠다.
출처 :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