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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칼럼]우리의 공부가 비 개인 여름날의 아름답게 빛나는 무지개를 피울 수 있기를 상세보기

작성자: 사무국 조회: 290004

청소년 칼럼

 

우리의 공부가 비 개인 여름날의 아름답게 빛나는 무지개를 피울 수 있기를

 

정성엽(19세)

 

비 소식이다.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는 뉴스는 끊임없이 TV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별다른 감정 없이 가방을 메고 우산을 드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무던히 쳐다보는 것도 잠시, 곧 나는 집을 나선다.

 늦은 오후, 학교에 앉아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무 이유 없이 비가 많이 내렸으면 한다. 그렇게 밖을 보던 중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일렁인다. 내리고 있는 비가 오늘따라 유난히 한 방울 한 방울 나눠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눈발처럼 말이다. 흐린 하늘과 학교의 하얀 창틀은 이런 이질감을 더 극대화하는 것 같았다.

학생. 학생이란 단어의 무게감은 나이가 들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청소년 시절, 막연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어떤 꿈을 위해서 공부해야 하는 우리들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학생에게 공부는 사회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의무로 변해가고 있다. 심지어 친한 친구조차 경쟁 상대라고 인식해야만 하는 학생이란 신분의 절망감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에게, 사회에게 벽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마치 빗방울이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어린 시절이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철없이 뛰어놀던 시절, 아무런 생각 없이 친구들을 대할 수 있던 그런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아쉬운 마음인지, 후회인지 모를 마음 때문에 오랜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시절 나의 주말은 특별한 날들이었다. 처음 인문학 공부 공간인 ‘아람샘’이라는 곳에서 인문학을 접하게 된 건 초등학생 때였다. 그저 책 읽고 이야기하는 곳이라 들었던 그곳의 첫 느낌은 오랜 동화책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은 방, 오래된 책상, 의자, 낙서들까지도 잊어버린 무언가를 기억나게 하는 공간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일요일은 항상 이곳에 머물러 있다. 

 물론 배운 걸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책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 책이 이야기하는 지구 어딘가의 아픔을 이해했고, 또 다른 책이 이야기하는 희망을 조금씩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 내 모든 사고와 가치는 올바른 것과 정의로움이란 단어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좀 더 ‘어른’들이 사는 세계와 직면하게 되었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누가 더 앞에 있고 뒤에 있는지를 따지는 무수한 숫자 중 하나였다. 시험이 끝나고 난 뒤, 교무실 앞에 붙는 성적순위표. 그리고 순위 안에 들어 특별한 권리를 누리게 되는 학생들. 거기서 나오는 오만한 권위와 불평등.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는 인지할 수 있었고, 그에 물들지 않을 힘,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법을 배워왔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행동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삶에 비겁해져 가고 있었다. 이런 고민들과 사회가 만들어낸 굴레 속에서 나는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했다. 내가 지키고자 한 모습과 가치는 이런 것이 아니라고 수없이 생각해봐도, 결국 오늘 하루도 타협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나는 모든 것을 타협해갔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것은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우고 있는 인문학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쓸모없는 영어 단어보다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나를 잠식해갔다. 그렇게 시간과 방황 속에서 서서히 무뎌져 갔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책상에 앉아 졸거나, 칠판을 쳐다보거나, 자습하거나. 그게 점점 일상이 되어버렸다.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이 되어갔고, 불면증이 오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가 망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세종의 공부』란 책에서 소개된 세종의 삶을 들여다본다. 세종은 공부한다. 그에게 있어 공부는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모든 걸 가지고 있는 권세가들 밑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백성들을 그는 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세종은 죽는 순간까지도 책을 놓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을 만들어 억울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자 했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인재를 뽑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세종이 추구하고자 했던 삶의 가치에서 시작된 일이었음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문득, 방황하던 중 “옳은 것을 행하고, 무언가를 진실로 원하면 행동해야만 해” 라던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가진 특권을 버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칸막이 책상이 아닌 친구를 옆에 두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에서 다시 본 교실은 달랐다. 우리에게는 서로 꿈을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대학교의 이름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우리는 꿈꿀 수 있다. 나는 그 친구들이 정말로 그 꿈을 이뤄서 먼 미래에 우리가 함께 웃으면서 만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 뒤로 공부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었다. 열심히 하려는 친구들을 도와주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옳은 가치를 행할 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할 때, 그것은 신념이 될 수 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변화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삶을 위해 자신이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을 인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 진정한 공부란 삶을 위한 공부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의 변화를 지켜내야만 한다. 나는 이 당연하지만 소중한 믿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비가 그치고 밤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물웅덩이가 여럿 보인다. 그런 물웅덩이 위로 가로등 불빛이 비치고 있다. 여럿이 나뉘던 빗물도 모이면, 어떤 빛이든 담아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형형색색의 이 길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게 된다. 지금 낱낱이 떨어져 입시경쟁에 몸부림치는 우리도, 이렇게 함께 모여 서로를 비출 수 있는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기를. 이 길의 끝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피워낼 삶의 공부를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출처 :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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