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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칼럼]재앙을 만나면 두려워하라 상세보기

작성자: 사무국 조회: 289778

 

청소년칼럼

 

재앙을 만나면 두려워하라

이혜진(21세)

 

“언제나 임금은 하늘을 공경하는 것과,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과, 하늘을 섬기는 것의 이 세 가지 일에 능히 그 도리를 다해서, 조금도 끊임이 없어야 하는 것이옵니다. 그래야만 재앙을 만나면 두려워할 줄 알고, 몸을 움츠려 덕을 닦으며, 그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재화를 돌이켜 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옵니다.”

 

위는 『퇴계선생언행록』에 기록되어 있는 말로, 퇴계 이황이 왕께 저녁 강의를 한 후에 아뢴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고 섬기는 마음을 가져 재앙을 막는 것. 당대 임금은 절대 권력을 거머쥔 존재였지만, 겸손한 몸과 마음을 갖추지 않으면 분명 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퇴계 선생은 충고하고 또 충고했습니다. 왕이 사사로운 마음으로 권력을 휘둘렀을 때 백성들은 굶주리고 고통받을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재앙들은 곧 국가가 쇠락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는 저는 처음에 전능한 ‘하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너무 미신적이고 허무맹랑한 일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첨단과학이 발달한 21세기에 하늘을 섬기고 공경하여 재앙을 막는다니요!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 크게 웃고 넘길지도 모르는 일이죠.

이 구절을 읽은 몇 달 뒤인 지난 추석날, 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고 발생지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가족은 사고 이후에 두 달간 타지에서 피난생활을 하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갈 곳도, 그들을 받아줄 곳도 없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피폭될 것을 우려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끼니마다 식재료를 방사능 측정기에 넣어보는 것뿐이라고 눈물짓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는 우리나라의 원전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들이 700여 건 이상 일어났다는 사실을 전했는데, 굉장히 놀랐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었던 ‘첨단과학’, 그리고 ‘발전’과 ‘성장’을 명목으로 한 것들이 이미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은 우리에게까지 도달하지 못했으니까요.

추석이 끝난 다음 날 아버지가 고리 원전에서 일하시는 한 친구와 우연히 이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놀랍게도 “일본은 지진이 일어나는 곳인데 너무 부실하게 지어서 그런 거야. 우리나라 발전소는 훨씬 더 튼튼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견고하게 지어졌더라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기에, 만약 0.0001퍼센트라도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있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가동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멈춘다고 했을 때 ‘부족한 전력’에 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할지라도, 일상의 불편을 감수하고 전력을 줄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선택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퇴계가 말했던 ‘하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왜 필요한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일들이 이후에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었을 때, 우리는 끝없이 재앙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잔혹한 시대를 겪어내고 있습니다. 바다에는 플라스틱 잔해가 가득하고, 전 세계 곳곳에 쓰레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를 주워 먹는 사람들, 쓰레기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무엇일까요? 매일 새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을 원할까요? 리모컨 버튼을 눌리기만 하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쏟아지는 가십거리들을 궁금해할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가장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음식과 청결한 주거지, 즉 한 인간, 한 생명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것들 말이지요.

그 권리를 박탈하는 재앙은 우리의 손에서 나왔지만, 이제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햇빛을 손으로 가린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지지 않듯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 그 빗방울을 피해 갈 수 없듯이 이제 단순히 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직시하는 ‘인식’의 문제만으로는 고통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사회구조적인’ 원인으로 출발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해서 전쟁이 멈추고, 바다의 쓰레기가 사라지고, 부의 분배가 균등하게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장 겸손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무엇으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를 제대로 알고 살펴서 그 광기를 멈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시대의 아픔을 고발하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 세대의 진정한 권리를 되찾는 일입니다. 옛 임금에게 이르러 퇴계 선생이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재화를 돌이켜 복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였듯이, 그 고통이 최초로 가능했던 지점을 철저히 캐묻고 근본적인 해결지점을 찾아 나가는 것은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가능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 믿습니다.

 

출처 :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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